[강대호 칼럼니스트] 지난주 한 언론사에서 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주제는 K팝. 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 사업으로 일요신문사 계열의 비즈한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 담당 기자는 오피니언뉴스에 연재하는 필자의 대중문화 칼럼을 읽고 섭외했다고 했다. K팝 관련 업계 동향이나 정책 관련한 필자의 견해가 여느 칼럼니스트나 평론가들의 시각과 다른 지점이 있어 인상적이었다며.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업계 관행처럼 굳어진 일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업계에 논란이 생길 때마다 관련 법을 개정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대중에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중에서 두 가지를 오늘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이돌 계약은 왜 7년인가?
담당 기자는 신인 아이돌 계약기간이 7년이면 길지 않냐는 취지로 질문했다. 연예인 지망생이 데뷔할 때 소속사와 지망생이 작성하는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 이 표준전속계약서는 문화관광부가 ‘행정규칙’으로 고시했다.
물론 계약기간에 괄호가 처져 있어 당사자 합의로 그 기간을 정할 수 있다. 하지만 ‘7년을 초과’해서 정해진 경우 7년이 지나면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는 조항이 결국은 신인의 전속 기간이 7년으로 굳어지게 하는 단서가 되었다.
전속 기간 7년은 계약 과정에서 힘없는 신인 연예인에게 국룰로 작용했다. 정부의 행정규칙이 법률은 아니지만, 행정명령과 같다. 권고이지만 당사자에게는 꼭 해야 하는 규제로 작용한다. 이로 미뤄보면 신인 아이돌 계약기간은 문화관광부에 의해 7년으로 못 박힌 거나 다름없다.
이 쟁점에는 먼저 짚어야 할 사안이 있다. 표준전속계약서의 탄생이다. 여기서 핵심은 ‘표준’이다. 과거 회사마다 다른 모습과 내용으로 존재하던 대중문화예술계의 전속계약서를 표준이라는 틀로 통일했다는 의미다.
한국 연예계에 표준전속계약서가 도입된 건 2009년이다. 배우 장자연 씨 자살 사건이 촉발했다. 장자연 씨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가 겪어야 했던 비참한 일들이 밝혀졌는데 모두 불공정한 계약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장자연 씨가 회사와 맺은 계약은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었다. 한 연예인에게 닥쳤던 비인간적 삶이 표준전속계약서 수립에 잉걸불이 된 것.
결국 2009년 7월 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예인 표준 약관에 따른 전속계약용 표준계약서’를 제정했다. 여기에 최대 계약기간으로 7년이 언급되었다.
그런데 왜 7년으로 했는지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추론만 할 수 있다. 당시 관행적으로 대형 기획사는 10년 이상, 중소규모 기획사는 2~7년으로 계약하고 있었다는 점이 고려되었다는 추측이 있었다. 즉 긴 기간과 짧은 기간의 중간을 택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법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순수 연기 활동이 7년을 다 채우지 않았어도 중간에 정직 기간을 포함해서 전체 전속 기간이 7년을 넘으면 계약기간을 만족시킨다고 규정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노동법의 해석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한국 법률 제정 때 반드시 해외 선진 사례를 파악해야 하는 점에서 미국법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타당성 있어 보이긴 한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전속계약서가 대중에 널리 알려진 계기가 있었다. 이른바 동방신기 사태, 즉 2009년 동방신기가 소속사인 SM과 벌인 소송 덕분이었다. 당시 동방신기 멤버 중 세 명이 ‘전속 기간 14년은 노예 계약’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공정위의 7년이 언급된 표준계약서를 그 논리로 내세웠다.
이후 신인 아이돌 계약은 7년으로 굳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 그룹의 수명 또한 7년인 경우가 많았다. 많은 팀이 7년 계약을 마치고 해체되곤 했다. 그래서 ‘마의 7년’, 혹은 ‘7년 징크스’라는 말이 나왔다.
2010년대 중반까지 연예인 표준전속계약서는 공정위 소관이었고 후반부터는 문화관광부 소관이 되었다. 행정규칙에 따르면 이 표준계약서는 고시된 2019년 1월 1일 이후 매 3년을 기준으로 내용을 재검토하게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행정규칙 고시 이후 재검토 소식은 없었다.
다만 최근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연내에 관련 표준계약서 기준 등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긴 했다. 지켜볼 일이다.
2023년 일본에서 열린 마마어워즈. 사진 제공=CJ ENM
미성년 연예인과 지망생 보호는 어떻게?
인터뷰 담당 기자들은 K팝 연습생과 아이돌 중 미성년자가 많다며 이들에 대한 보호 규정에 관한 질문도 많이 했다. 사실 작년 이맘때 미성년자 보호 관련 법률 이슈가 터졌었다.
2023년 5월 16일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매니지먼트연합, 한국음반산업협회,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한국음악콘텐츠협회 등 5개 단체가 “연령을 세분화해 청소년 연예인의 용역제공 시간을 제한하는 이번 개정안은 현실을 외면한 ‘대중문화산업 발전 저해 법안’”이라고 성명을 냈었다.
이들 단체는 음반산업 관련한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들이 중심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적한 법안은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다. 이 법에는 미성년 연예인 보호 조항들이 있고, ‘노동 시간 상한’이 정해져 있다. 15세 미만은 주 35시간, 15세 이상은 주 40시간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년 5월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에서 미성년 연예인 활동 시간을, 12세 미만은 하루 6시간 주 25시간, 12∼15세는 하루 7시간 주 30시간, 15세 이상은 하루 7시간 주 35시간으로 변경했다. 즉 미성년자를 나이 구간에 따라 더욱 세분화했고 활동 시간도 줄여버렸다.
그러니까 업계 관계자들은 미성년 연예인들의 활동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매출이 감소하는 건 물론 미성년 멤버가 포함된 아이돌 그룹 등의 활동이 위축될 게 뻔하니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미성년자를 보호하겠다는 법률 개정에 성인들이 반대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는 논란이었다.
그렇다면 이 개정안은 어떻게 되었을까? 작년 5월에 소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그다음 단계인 법사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고 한다. 만약 이 상태로 5월 말에 이번 국회 회기가 끝난다면 자동 폐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업계의 압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현안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은 없었던 일이 되어가는 형국이다. 문화관광부의 국회 담당자가 계속 독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한국 대중문화예술계에 몸담은 미성년자들에 대한 보호는 규정으로만 보면 촘촘한 듯하다. 미성년자와 계약하려는 회사는 표준전속계약서와는 별도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의 미성년자 보호에 관한 조항들이 담긴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또는 연습생) 표준 부속합의서’를 추가로 작성해야 하니까. 이 또한 문화관광부의 행정규칙이다.
게다가 지난 3월 27일 문화관광부는 <대중문화예술산업 종사자가 알아야 할 아동·청소년 권익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과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또는 연습생) 표준 부속합의서’에 명시된 활동 시간대 제한. 휴식권 및 수면권, 건강권, 학습권 등의 미성년자 기본권 보장에 관한 지침이 담겼다.
이런 것들만 보면 대중문화예술계에 몸담은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문광부가 무척 노력하는 거로 비친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정부가 이렇게까지 청소년 연예인(지망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액션. 혹은 선언. 그러니까 보여주기 위한 행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회피 논리로,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라는 논리로 작동하는 시스템일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건 정부의 감독을 벗어난 당사자들의 문제라는 논리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러고 보면 아이돌로 상징되는 K팝 신(Scene)은 미성년자 지망생의 꿈을 실현하는 장이기도 하지만 그 꿈을 이용해 성인들이 각종 이해관계의 판을 벌여 놓은 현실 세상의 축소판처럼 보이기도 한다.